내가 애정하는 글들

횡단보도

횡단보도란 보행자가 도로를 건널 수 있게 만든 보행시설이다. 비슷한 시설로는 지하도나 육교가 있다. 지하도는 땅 속으로, 육교는 도로 위에 다리를 놓아 보행자를 건너게 해 주는 보행시설이다. 횡단보도와 지하도, 육교의 차이점은 신속성에 있다. 횡단보도는 우회하지 않고 도로를 바로 건널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지하도나 육교와 차이가 있다.

횡단보도는 앨범의 커버나 만화 속 배경으로도 자주 등장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횡단보도는 비틀즈의 앨범과 동명인 'Abbey Road'이다. 'Abbey Road'는 영국에서 1969년 9월 26일에 발매된 비틀즈 앨범의 제목이자 표지 사진에서 비틀즈의 멤버들이 나란히 걸었던 횡단보도의 이름이다. 횡단보도를 걷는 비틀즈 멤버들의 모습은 각자의 개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맨발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폴 매카트니의 모습은 폴 매카트니 사망설 등 수많은 음모론을 낳기도 했다. 마치 끝없이 한탄하는, 길을 잘못 든 집 없는 영혼들처럼, 비틀즈는 이 앨범을 가장 마지막에 녹음하고서 1970년 4월 10일, 해체를 발표했다.

이후-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의 "룸"

후일담이라는 단어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어떤 사실과 관련하여, 그 후에 벌어진 경과에 대하여 덧붙이는 이야기라고 한다. 즉, 영어의 epilogue와 유의어라고 할 수 있다. epilogue는 문학비평용어사전에 의하면 원래 연극의 마지막 한 장면이나 대사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이것이 서사의 종결 부분을 지칭하는 용어로 확대되어 쓰이다가, 현대에 와선 이야기의 끝에 덧붙는 특수한 결말의 단계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문학에서는 1990년대에 등장한 후일담 소설이 있다. 이 시기에 나타난 대표적인 작가로는 김영하, 공지영, 최윤 등이 있다. 최윤의 "회색 눈사람"은 1970년대 지하 운동권에 연루되어 무명 조직원으로 활동했던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이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 들어간 모던 락밴드 언니네 이발관 정규 2집의 이름도 후일담이다. 이처럼 후일담이라는 용어는 널리 사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아마 이후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원인인 듯하다.

우리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다음 페이지, 혹은 다음 장면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이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을 보고 난 후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이후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피터 위어 감독의 "트루먼 쇼"를 보고 난 후에는 세상으로 한 발짝 나아간 트루먼의 미래에 대해 상상해보게 된다.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에서 양조위의 모습을 보고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2편에 대해 상상해보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를 보고 난 관객들은 나올 예정이었던 2편과 3편에 대해 기대를 했지만, 이제는 나오기 힘든 것 같다.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의 "룸"도 이후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2015년 개봉한 브리 라슨과 제이콥 트렘블레이 주연의 "룸"은 전반부와 후반부가 확연히 구분된다. 엄마 조이와 아들 잭이 룸에 갇혀 있었던 전반부와 탈출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는 후반부로 나뉜다. 주목할 부분은 탈출 이후의 이야기이다. 잭은 빠르게 세상에 적응해가지만, 조이는 후유증으로 인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다. 언론과의 인터뷰 이후에 조이는 자살을 시도한다. 잭은 삼손 일화에 착안하여 자신의 머리카락을 조이에게 선물하고, 조이는 무사히 퇴원한다. 시간이 흘러 잭과 조이는 룸에 다시 찾아가게 되고, 작별인사를 한다.

영화는 탈출 이후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는 서로 의지하며 트라우마를 회복해가는 엄마와 아들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감금 이후 원치 않는 엄마로서의 삶도 떠안게 된 조이의 삶은 그 누구도 보상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조이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다고 끊임없이 자책을 한다. 같은 나이대의 친구들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동안 조이는 더 이상 평범한 삶을 살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한 책임은 조이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가해자가 온전히 처벌을 받게 되어도 피해자의 트라우마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잭의 삶도 평탄한 것은 아니다. 유아기의 경험은 삶의 밑거름이 된다. 타인과, 혹은 자연물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은 성장을 한다. 잭은 룸에 갇혀 바른 성장을 하기 힘든 상황을 겪었다. 타인이라고는 엄마 조이가 전부였다. 다행히 룸에서 탈출한 후 잭은 사회에 적응하게 되고 친구도 만나게 된다. 잭은 엄마 조이에게 힘을 주기 위해 머리를 잘라 선물한다. 비록 원하지 않은 엄마의 삶을 살게 될 조이지만 잭의 존재마저 없었다면 그렇지 않아도 힘든 세상을 살아가기 더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룸"을 보고 난 후 조이와 잭의 이후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둘은 룸에 찾아가 작별인사를 한다. 잭은 룸이 이렇게 작았냐고 물어본다. 오직 룸이 세상의 전부였던 잭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와 때로는 고난과 역경을 겪겠지만,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쳐 보일 것이다. 조이는 더 이상 걱정 없이 햄버거를 먹고, 바다를 놀러가고,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둘은 앞으로도 함께일 것이다.

영화 밖으로 나와 "룸"의 주연이었던 브리 라슨과 제이콥 트렘블레이의 이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브리 라슨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고 주목받는 배우로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영화 캡틴마블 캐럴 댄버스 역할에 캐스팅된 이후 스탠 리 추모 사진 논란 등을 일으키며 악평도 받게 된다. 제이콥 트렘블레이는 영화 원더의 어기 역으로 캐스팅되는 등 연기력을 갖춘 배우로 성장하게 된다. 그들의 이후도 잘 풀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종관 감독의 "최악의 하루"에서 료헤이는 이렇게 말을 한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니까요. 여자 주인공은 꼭 행복해질 거예요.”
잭과 조이도 이후의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길. 현실에 살고 있을 잭과 조이도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행복하길. 그리고 현실에서는 더 이상 잭과 조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길고양이

길고양이는 도망가기 바빠요
쓰다듬고 싶어서
뻗은 손이 무색해지는 것이에요

먹을 걸 줘도 도망가요
그만 도망가 줬으면 좋겠어요
차 밑으로 자꾸만 자꾸만

예쁜 고양이는 도망가기 바쁘고
나는 고양이가 좋아
고양이를 봐요

똘망똘망한 눈
작은 분홍 코
뭉툭한 귀

짧은
꼬리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쓰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아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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